"바텐더님, 여기 로맨스 소설 한 잔이요"
- 오더블, 책 없는 서점을 오픈하다
"반전 있는 스릴러를 좋아하는데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뉴욕 맨해튼의 한 바. 27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라이언 민은 바텐더에게 취향을 설명한 뒤 헤드폰을 건네받았습니다. 잠시 후 흘러나온 것은 칵테일이 아닌 스티븐 킹의 오디오북 샘플이었습니다.
이 독특한 공간의 주인은 아마존이 보유한 세계 최대 오디오북 플랫폼 오더블(Audible)입니다. 오더블은 최근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오더블 스토리 하우스(Audible Story House)'를 열었습니다. 규모는 약 170평. 그런데 정작 이 서점에는 책이 없습니다.
🎧 책 대신 헤드폰을 진열하다
오더블 스토리 하우스에는 일반 서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거의 없습니다.
책장에는 종이책 대신 반투명 아크릴 패널이 꽂혀 있습니다. 방문객이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해당 작품의 오디오북 미리듣기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바에서는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오더블은 이 직원을 '스토리 텐더(Story Tender)'라고 부릅니다.
지하에는 누워서 오디오북을 감상하는 리스닝 라운지, 상층부에는 작가와의 대화와 커뮤니티 이벤트를 위한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말차 라떼를 판매하는 카페와 굿즈샵까지 갖췄습니다.
📈 진열대 없는 출판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다
오디오북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출판협회(AAP)에 따르면 출판사 매출에서 디지털 오디오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3.5%에서 지난해 11%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출판 산업 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오디오북은 서점에서 펼쳐볼 수도, 진열대에서 우연히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상품의 가치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오더블은 바로 이 지점을 공간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 디지털 기업은 왜 170평짜리 서점을 만들었을까
흥미로운 점은 오더블이 이 공간에서 오디오북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더블의 목적은 개별 상품 판매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과 신규 구독자 확보에 있습니다. 실제로 방문객들은 작품을 구매하기보다 머물고, 듣고, 추천받고, 취향을 공유합니다.
오더블 글로벌 브랜드·콘텐츠 마케팅 총괄 제임스 핀은 "사람들은 디지털뿐 아니라 실제 경험과 유형의 무언가를 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아마존은 왜 다시 오프라인으로 갔을까
오더블은 앱만으로도 충분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기업입니다. 고객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결제도 온라인에서 이뤄집니다. 그럼에도 오더블은 뉴욕 한복판에 170평 규모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디지털이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디지털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경험의 가치가 커지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리테일 시장에서는 더 이상 '무엇을 파느냐'가 차별화 요소가 아닙니다. 같은 상품은 언제든 온라인에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간의 경쟁력은 상품이 아니라 방문 이유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오더블의 책 없는 서점은 어쩌면 미래 리테일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객은 왜 굳이 이 공간까지 와야 하는가?"
앞으로 살아남는 공간은 그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게 답하는 공간일 것입니다.